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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상을 현실로 재현하다 1편.퓌센(Fussen)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dmitrii 2008. 12. 4. 11:55

오랜만에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지 1년반을 훌쩍넘기고 유럽을 보겠다고 나선지도 벌써 두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행의 피로감과 안락함의 그리움이 순간 순간 밀려오고 있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해 스페인에 와서야 겨우 글을 올릴 정도의

인터넷속도가 나오는 캠핑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알람브라궁전이 있는 곳입니다.

고국의 뉴스를 접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제가 다니는 여행이

큰사치로 보일까봐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왕 나선 여행길이니 즐겁고 활기차게 다녀야겠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홍보사진에서 찍었습니다. 불법아님^^ )

 

 오늘은 독일의 퓌센지방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오버머가우의 린더호퍼 성에 대하여 두꼭지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성과 린더호퍼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인물을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인물을 소개하려면 여러가지 사전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일일이 다 설명드리기엔 재미도 없고 말도 길어질 것 같아 약간의 요약으로 끝내기로 하겠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원경)

 

 

노이슈반슈타인 성 주변 (원경)

 

 

루드비히 2세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감수성이 있어보입니다.^^

 

 

노이슈반슈타인성과 린더호퍼성을 만든인물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광적인 팬인

루드비히 2(1842~1886)라는 왕입니다.

 

 이왕은 절대군주 막시밀리안 2세 밑에서 자랐습니다.

루드비히 2세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에다

보통의 남성이 좋아하는 검술이나 기마대신 문학과 오페라에 심취한 인물입니다.

루드비히 2세는 키가 190미터나 되고 휠칠한 외모였다고 합니다.

18세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왕위는 당시의 불안한 정세(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전쟁을 일으키고)

뮌헨의 귀족들이 왕권을 찬탈할려는 음모를 펼치는등

감수성이 예민한 루드비히 2세의 정신력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뮌헨을 벗어나 퓌센등지에서 은둔하여 궁전을 짓는데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결과물로 생겨난 성이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린더호프 성 그리고 헤렌킴제 성입니다.

 

 

 

 

성에 입장하여 입장권에 기재된 번호순서대로 입장하여

내부를 볼 수 있으며 성에 소속된 안내원의 인솔과 설명에 따라 관람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내부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들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심취한 루드비히 2세가 오페라의 내용을 모티브로 하여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로엔그린의 전설

..로엔그린이라는 기사가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왕자의 도움을 받아 공주를 구한다는

을 재현한 성으로 온통 백조로 덮힌 성입니다.

그리고 린더호프 성은 탄호이저.를 모티브로 하여 재현한 성입니다.

그래서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이름에도 나타나듯이 백조의 성입니다.

 

 

성내부에서 바라본 알프스 

 

 

 

 

 

 

 

성내부 천정화(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나 초입이라 한장쯤 눈감아준 사진)

 

 

성내부에서 바라본 성입구

많은 관람객들이 대기해 있는 곳입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건너편 마리엔다리에서 바라본 성

(마리엔 다리에서 바라본 성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만 제가 갔을땐 외관 공사중이라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습니다. 천으로 다 막아놓은 상태라)

 

 

린더호프성은 다음편에 상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루드비히 2세는 당시정적들에게 미치광이 왕이라고 몰렸고

바그너에 심취하고 결혼도 하지 않아 동성애자로도 몰리게 됩니다.

현재의 우리들의 생각에도 겉보기엔 미치광이나 동성애자의 자격이 충분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미치광이라기 보다는 심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내면을 가진

루드비히 2세의 현실을 잊게하는 도피행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루드비히 2세는 치세보다는 개인적인 일에 몰두함으로서

왕으로써의 자리는 항상 위험했다고 보입니다.

역사가들은 루드비히의 치적으로 신하의 교육에 힘써고 나름 선정을 베풀고

전쟁억제를 위해 노력했다고도 합니다만

이러한 치적에 비해 행한 기행들이

왕으로서의 자격을 유지시키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루드비히 2세가 만든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예술적인 면모는

오늘날 디즈니의 환상의 나라 성영감을 줄 정도로 아름다운 성입니다.

성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외부밖에 사진으로 찍을 수 밖에 없지만

내부의 아름다움은 외부의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루드비히 2세는 정적에겐 미치광이로 불렸지만

퓌센이나 오버머가우 주민들에겐 매우 인기가 있는 왕이었습니다.

비록 왕이긴 하지만 왕의 권한을 남발한다거나 주민들을 괴롭히는 짓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루드비히 2세는 오직 자신의 사재로 성을 짓고 그리고 그 성으로 인하여

퓌센과 오버머가우 지방의 경제가 활황을 이루었다고 하니

이지방 주민들은 마음이 여리고 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덕을 톡톡히 본 샘입니다.

 

 

마리엔 다리 입구근처에서 바라본 호엔슈반가우성

(호엔슈반가우성은 루드비히 2세가 어린시절을 보낸곳입니다.) 

 

 

 

호엔슈반가우 성(망원)

 

 

 

루드비히 2세의 말로는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뻔한것입니다.

정적들에게 납치되어 뮌헨 근처 베르그성에 감금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바그너에 대한 연정(바그너의 오페라에 대한 연정)

바그너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그너는 바그너 자신이 생을 다할 때 까지 노이슈반슈타인성 뿐 아니라

린더호프성 조차 방문한적이 없었다고 하니

루드비히 2세의 바그너에 대한 짝사랑이 애닮기까지 합니다.

 

 

 루드비히 2세는 평판이야 어찌되었던 후손들에게 막대한 관광수입을 남겨주었으며

그리고 피의 업적이 아닌 자신의 비용과 죽음으로

(당대나 후대의 독일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대신했다는 것이 최대의 업적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은 루드비히 2세의 개인별장이었던 린더호프성에 대하여 글을 올릴까 합니다.

출처 : 황똘과 동그리의 소소한 이야기*^^*
글쓴이 : 황똘과 동그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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