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자녀 교육

한국에서 아이 낳아도 되는 걸까?

dmitrii 2008. 8. 8. 14:22

한국에서 아이 낳아도 되는 걸까?

  공정택 교육감의 당당한 포부에 대하여 포스팅한 바 있다. (2008/07/31 -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 교육감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오늘 학교를 제대로 줄 세워보겠다는 교육부의 야심찬 계획을 보게 되었다. 무려 6%의 지지도로 당선되었으니 서울 시민으로부터 교육 권력이 정당성(?)을 얻게 되었고 전부터 떠들어대던 新(한자로 '신'이라 쓰고 우리말로 '쉰'이라 읽는다) 교육정책을 밀어붙일 기세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한국에서 아이 낳아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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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서운 세상에 말인가요?


  이미 학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사교육 시장의 확대는 사회 이슈화 시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가 되었다. 교육감 말마따나 학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학원이 언제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많은 대학생들의 경험담대로 서울 시내에서 수업 마치고 공차는 초등학생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미 6년전에 내가 목동에서 초등학생 하나를 과외할 때부터 그 동네에는 오후에 놀이터가 텅텅 비어있었으니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도 별반 차이 없었다. 남자 중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방과 후에 축구 경기 한판 제대로 할 만큼 아이들이 남아서 노는 것을 못봤다. 그렇게도 날씨 좋은 5월에 말이다. 아이들은 이미 학원과 과외에 꽁꽁 묶여 있다. (나 또한 먹고사니즘에 빠져 거기에 일조하고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과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은사님은 나와 친구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을 당부하셨다. 물론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에 나온 말씀이었다.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보람되고 복된 일인가, 에 대한 것은 TV를 통해서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실제로 애 낳아봤냐?'라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지만 지나가다 꼬맹이들을 보면 괜히 웃음짓게 되는 것은 내가 아이들을 많이 좋아한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라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선다. 예전에 노무현 전대통령의 대표적 구라말씀 중의 하나로 "아이 낳으십시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라는 것이 있었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우려 때문에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말했던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처우는 나아지지 않고,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는 상황에다 치솟는 물가에 악화되어가는 경제 사정에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거기다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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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도 학원에가는 초등학생들(출처: 오마이뉴스 ⓒ 최상아)


내 아이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교육을 전공한 입장에서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겠다. 학교의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학부모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는 것이고, 그것은 2010년부터 시행될 학교 선택제를 위해 알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네들이 만든 정책 때문에 학부모의 알권리라는 것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또 서열화에 대한 우려에 대하여 "모든 학생에게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와 "교육조건이 열악한 학교를 끌어올리기 위해"를 들었다. 모든 학생에 대한 학습권 보장은 학생들이 부모의 '돈'이나 '권력'과 관계없이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만하다. 교육조건이 열악하다는 것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언제나 해왔던 말이고, 국방예산은 눈알이 빠져라 올리면서 교육 예산을 쥐꼬리만하게 편성하고 있는 정부에서 '감히' 할 소리가 아니다. 그건 학교를 줄세워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실태조사를 통해 충분히 이루어 내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학교를 서열화시켜서 경쟁을 유발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교육부는 학생들의 실태(?)를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한국의 , 고등학생들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일 것이다. 많이 완화(?)시켜 주었다고는 하나 학습량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고 여가 시간 따위를 즐기는 중, 고등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공부를 포기한 학생이 아닌 다음에는 모두 대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과목수를 줄인 것 같아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여러가지를 요구'하는 학교, 대학 입시 때문에 학생들이 소화해 내야 할 분량은 훨씬 많다. 모두가 이야기한다. 고3때만큼만 공부하면 사법고시건 행정고시건 안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과장이 섞인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현실의 중, 고등학생들이 맹렬한 기세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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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에도 이런 것 만들 생각이거든!


  충분히 경쟁하고 있는 아이들을 더욱 경쟁시키겠다는 것은 무슨 의도에서일까? 간단하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아서이다. 학교의 성적을 공개하고 서열화 시키겠다는 것은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을 점수를 내는 도구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점수가 안 좋은 '도구'는 두들겨 패든 갈구든 해서 좋은 성적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래도 되지 않으면 점수가 안 좋은 도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전학을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야 자기 학교의 서열이 올라갈테니 말이다.

  지금에야 그럴싸하게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를 끌어올려 주기 위해라고 이야기 하지만 경찰이 시민을 몇 명 사냥해왔느냐에 따라 돈을 주거나 혹은 마일리지를 준다는 놀라운 발상을 하는 이 정권이 학교를 '자율화'시키면서 성적이 부진한 학교에 대해 예산을 줄이거나 학교 복지 혜택을 줄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은 너무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당장 교직원들의 월급과 학교의 돈줄이 걸린 상황에서 '도구를 교체'하는 것을 넘어 '안되는 도구'는 '쓰지 않는' 방법을 취하지 않으리란 것은 누가 장담할 것인가. 반에서 꼴찌하는 학생이 내일 있을 학력고사에 '갑자기 아파서' 안 나오는 일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쟁이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세상 모든 것이 경쟁, 경쟁, 경쟁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은 정말로 경쟁에서 살아남아봤던 자들이다. 자기들은 그 경쟁을 똑똑한 머리를 사용했든,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든, 든든한 빽을 이용했든, 운빨이 제대로 붙어줬든 어쨌든 이긴 자들이다. 그러다보니 경쟁만 하면 자신들과 같은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고 그 '엘리트' 그룹이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 대단하신 성골 귀족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결정체를 보라. 우리 대통령님께서 사랑해마지 않는 미국이다. 세계 최고의 소득 불균형과 범죄율, 살인율, 낙태율을 보이는 바로 그 나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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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대통령인 그 나라 말이다


  아이들을 그렇게 경쟁시켜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소위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이 올라가는가? 내 생각에는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다. 이미 세계 최고의 학력을 자랑하고 있는 우리의 중,고등학생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생일진데, 한국의 사립대학들은 4년 내내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받아도 다 낼 수 없을 만큼의 등록금을 강요하고 있다.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의 한도는 4000만원이고, 이미 사립대 이공계는 1년에 1000만원을 넘은 과가 수두룩하다.) 대학생들은 학비를 버느라 공부할 겨를도 없고, 공부를 하더라도 취업 때문에 토익에만 매달려 있으니 대학의 학문이 발전해 나갈 방도가 없다. 결국 대학생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무너지고 있다. 투명한 기업 경영을 통해서 경쟁력을 높여야 되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순간 이건희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결국 애꿎은 중,고등학생이 타겟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 아이의 삶을 찬찬히 생각해 보았더니 꽤 끔찍했다. 내가 아이스하키채로 맞으면서 공부했던 시절보다도 훨씬 암울한 미래가 도사리고 있었다. 유치원부터 제대로된 테크트리를 밟아나가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은 물건너 간 것 같았다. 초, 중, 고가 한 줄로 늘어서 있으니 유치원 때 놀았다가 '공부 못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는 '공부 잘하는' 중, 고등학교로 진학하기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어느 순간에도 아이가 숨을 쉴 곳은 없었고 끝없이 공부에 치여 사는 삶만이 보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연을 사랑하게 만들기에는 이 사회에서 그 아이를 자신만의 두다리로 서게 하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경쟁과 경쟁과 경쟁을 거쳐서 살아남은 자들과 산이며 들로 뛰어다니던 나의 아이가 어떻게 한 곳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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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아이들은 '함께'라는 의미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아이 낳아도 되는 걸까?
  나는 내 아이를 보고 싶은데 과연 그 아이는 저 정글과 같은 세상에 자신을 내놓은 나를 이해해줄까